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시편 강해 5장 [죄로부터의 보호기도]

 

시편 5장

[죄로부터의 보호기도]


1.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12절까지)


다윗의 시입니다. 3편, 4편은 압살롬에게 쫓길 때의 시이고, 5편은 배경이 안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의 대부분을 썼다는 것은 다윗이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기도의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시편을 보면 우리는 놀라운 기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리소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감정을 통찰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절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기도할 때, 다윗은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통칭 하나님을 아도나이, 나의 주님 이렇게 부르는데 다윗은 실제로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섬김으로 이렇게 부릅니다. 기도는 실제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버지’라고 부를 단계가 아닌 불신자는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뭐가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라고 부를 마음이 없으면 오히려 ‘아저씨’라고 부르면 나중에 진짜 아버지가 됩니다. 기도는 나의 심정 가운데 올라오는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데, ‘왕’이라고 부르는 다윗의 기도는 다윗의 심정에서 올라오는 하나님을 절대자로 섬기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신앙은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분이 나의 절대자로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기도의 서론 부분입니다. 굉장히 좋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보통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는데, 다윗은 ‘이제 기도를 시작할테니 잘 들어달라’하는 서론을 펼칩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임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지금 다윗은 아침에 기도하는 상황을 아룁니다. 우리는 하루 중 언제라도, 새벽, 아침, 저녁, 밤 기도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인 아침기도를 더 좋아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세계에서 유대인과 한국인만이 새벽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의 기도는 아침에 깨어났을 때, 다른 모든 생각을 접어두고 하나님과 먼저 교통하고 시작하는 약속입니다. 교통한 후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마음이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취직하기 전에 먼저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한 다음 결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결정한 다음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거래하기 전에 ‘하나님!’하고 묻는 것입니다. 결정하기 전에 미리 하나님 앞에 아침 문을 여는데, ‘아침’이라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라 결정전을 말하며, 모든 것을 하기 전에 미리 기도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기도한 후,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오는 것입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기도하고 도움을 바라는 것이지, 결정을 다 한 후에, ‘도와주세요’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절입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지금 다윗은 사건을 말하지 않고 영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게 다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이런저런 일 자체를 기도합니다. 다윗은 사건 배후에 있는 영적인 것, 다시 말해 이 일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지, 혹시 죄가 되지 않는지를 듣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모든 일의 배후에는 선과 악이 있는데 행악자들은 그 일로 인하여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을 행할 때 중요한 것은 거룩한 마음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일의 성공이나 성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진행 과정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가?’하는 것을 다윗은 늘 진단합니다. 다윗의 본론은 일의 승부수가 아닌 바른 삶을 살기 원하고, 의로움 가운데 있기 원하고, 항상 바른 삶을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다윗의 기도는 우리와 다른데 거룩한 삶을 탄원하는 진리의 기도입니다.

6절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피흘림과 거짓말은 죄의 정수입니다. 피는 다 죄를 상징하는데 영계에 세계에서 환상 가운데 피가 나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속임과 거짓된 삶을 원치 않는 다윗의 순결한 기도입니다. 인생의 승부수는 어떤 위대한 성취나 번영, 형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한치에 오차도 없이 하나님 앞에 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삶이 중요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7절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사랑은 은혜를 뜻하고, 원어는 풍성한 은혜입니다. 주의 집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를 상징합니다. ‘내가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시편 23편이 끝납니다. 다윗이 원하는 것은 푸른 초장도 아니고 맑은 시냇물가도 아니고 음침한 골짜기로부터의 해방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정말 원한 것은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만나는 것을 소원합니다. 이게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간절한 기도는 의로운 삶과 항상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높은 사람, 나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을 만나기 좋아하지만, 매일 하나님 만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다윗은 목동 때부터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의 결과로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었고, 사울과 압살롬에게 쫓길 때도 범죄하지 않고 용서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다윗이 이런 험난한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한가지는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큰 상황을 만나면 상황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은 아직 하나님의 집을 원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못 만난 것입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겐 오직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일생 목표는 평생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의 집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를 경외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경건한 자녀가 부모를 두려워하듯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바른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매우 엄위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도 구별되는데, 구약에서는 천둥소리에 비유합니다. 요즘 ‘예언 받았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 가짜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그렇게 오질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으로 오는데 너무나 엄위해서 떨리고 압도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정답이어서 우리와 타협이 없습니다.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그런데 성전이 없었습니다. 모세의 성막이 있었고 아직 성전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다윗이 준비했고 솔로몬 때 지어집니다. 다윗은 지금 없는 성전을 말하는데 이것이 신앙이고 기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이고, 주의 집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에 계시고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그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이 내 눈에 보여지는 것이 성전입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여지고 하나님의 생각이 느껴지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윗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동일하게 구약의 인물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신약 시대는 성령시대, 복음시대이며 직접 계시가 없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시고 나타내주십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원수는 사람이나 상황이 될 수 있는데 다윗은 이것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의로 나가는 것을 막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염려가 문제고,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이 문제입니다. 지금 원수들이 상황 가운데 사고를 나게 하고 재난을 주고, 풍파를 줍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황 가운데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 이게 원수인데 주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내 안에서 내가 의로 작동하면 성령님이지만, 그러나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작동하는지가 본론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인간은 의를 가지고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내부적으로 자기가 미워하고, 원망하고, 탐욕하고, 음란하고, 시기하고 그래서 자멸하는 것이지 환경이 멸망시키는 게 아닙니다. 다윗은 내부적으로 주의 의로 인도함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원수 때문이 아니라, 원수의 본질이 마귀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내부의 의가 상할까봐 고민하는 것입니다.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내가 주님의 길을 곧바로 따라가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하나님은 아쉬울 게 없으며,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또 세웁니다. 내가 먼저 주님의 길을 잘 갈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게 본론입니다. 결국은 먼저 차지하고 얻는 자가 임자입니다. 인생은 후~하면 살아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과 거래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이 했다’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이 기분 나빠하시면 끝난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길을 갈 때 돌아가거나 지체하지 않고 낮은 마음으로 곧바로 가야합니다.

9절입니다.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로마서 2장에 사도 바울이 우리 인생의 죄를 말하는데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인간에게서는 죄만 나옵니다. 인간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둘로 나뉘는데 예수님 안에 들어와 거룩해지지 않는 한, 인간은 항상 악합니다. 다윗은 마음부터 생각과 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을 추구합니다. 인생의 원수는 죄입니다. 다윗은 이 악으로부터 보호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길을 빨리 가길 원하는데 원수들은 목에 무덤처럼 만들어 버리고 아첨하는 입이 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성결케 합니다. 다윗은 죄의 본산을 본 것입니다. 본산은 마음과 목구멍, 혀까지 있는 것을 잡아낸 것입니다.

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여기에서 ‘그들’은 사람을 말하지만,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어둠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고통에 빠지면 악이 나오게 돼 있어요. 그런데 다윗은 지금 곤란 가운데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내부적인 세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외부를 정리하는 건 하수입니다. 다윗은 심중에 죄를 유발시키는 원수를 기도로 결박하며 거룩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그들은 곧 우리 안입니다. 내부 세계는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적입니다. 원수는 내 안에 있는데 이것들을 물리치고 거룩으로 감싸주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는 큰 성읍을 차지함 같으며, 나를 잘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 안의 혈기, 욕망, 야망을 잘 다스려서 내 안의 악을 제거하고 하나님과 적대적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악하면 떠납니다. 내 안의 원수가 나와 하나님을 이간질하기 때문에 내가 악하면 교회를 다니건 예배를 드리건 상관없이 하나님은 떠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악과 타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선의 카테고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으며, 죄인 구원은 만들어낸 교리입니다. 심중에 거룩을 소유한 의인만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속성상 절대 나쁜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인과 의인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악인과 죄인은 항상 마귀와 함께합니다. 우리는 악한 자의 편에 가담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불신자를 구원받기 위해 전도할 수 있지만, 함께하면 안 되는데 같이 망합니다. 배우자가 불신자이면 지옥 갈 확률이 90% 이상입니다. 상대편 배우자가 불신자이면 끌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같이 악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견디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모세와 요셉과 같은 사람에게만 찾아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인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재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임재를 요청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해야 임재하실 수 있고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서 이탈하십니다. 우리는 대표 기도 시간에 일주일 동안 지은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사해달라는 기도로 때우려고 하는데 그걸로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애통하고 상한 맘으로 눈물로 기도하며 죄를 사함받 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여기에서 ‘피하다’는 도망가는 것이 아닌 시적인 표현인데 영적으로 주께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주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기쁨은 하나님을 만난 증상입니다. 기쁨이 사라지고 우울하다면 영적인 문제가 있는지 진단을 해봐야 합니다. 천국은 어둠이 없고 기쁨이 충만한 곳인데 신앙은 이 천국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데 맛을 못 느끼면 믿는 게 아닙니다.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원히 기뻐 외치며’
누구로부터의 보호입니까? 마귀, 상황적 마귀가 아니라 내적인 마귀, 마음을 물들게 하는 마귀로부터 보호받고 또다시 기쁨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기쁨은 주를 만난 증거입니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즐거움이 있는데 삶이 늘 평안합니다. 기도한 결과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11절까지는 본론이고 12절은 대단원입니다. 복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받는 겁니다. 어떤 복입니까? 마귀로부터 보호받는 복, 기쁨과 평안의 복, 영생의 복들을 누리는 것입니다.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방패와 같이 주님의 은혜가 나를 원수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의인들은 영적인 승리의 보호를 받고 살아갑니다. 이 보호가 성벽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서에 보면 성벽 재건이 나오는데, 이 성벽은 적들의 공격을 막아줍니다. 성전 파괴는 믿음의 실족을 말합니다. 성전은 구원을 의미하지만, 성벽이 무너지면 믿긴 믿지만 늘 마귀한테 공격당합니다. 다윗은 성벽이 있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늘 방패로 적들을 막아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있는 것처럼 다윗의 신앙은 성전과 성벽이 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면 성벽이 세워져서 원수인 마귀와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니까 늘 의로움으로 살아갑니다. 구원의 완성은 성전과 성벽이 다 있는 것, 이것이 안전한 것입니다. 성벽을 굳게 쌓으면 어떤 원수도 우리를 못 넘어뜨립니다. 성벽이 무너지면 성전, 즉 신앙이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적들이 성벽을 무너뜨리면 성전이 위협받아, 다시 말해 신앙이 위협받아 구원 상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면 끝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나를 의로 둘러 진을 쳐서 늘 의로운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입니다. 예루는 성, 살렘은 평안, 예루살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후에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는데, 지금 예루살렘에 있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갑니까? 우리가 다윗처럼 성전과 성벽을 갖춘 신앙이 된다면 나중에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kck433342@gmail.com)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욥기 강해 42장 [고난은 복음전파의 능력을 갖게 합니다]

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욥기 강해 41장 [고난은 리원야단과 같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거대한 능력입니다]

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시편 강해 1장 [천국 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