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시편 강해 6장 [신유축사기도]



시편 6장

[신유축사기도]


1.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10절까지)


다윗의 기도시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성경에 실린 이유는, 다윗이 추구한 것은 하나님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부, 성공, 건강, 형통, 자아 성취와 같은 본능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다윗이 추구하는 방향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내가 원하는 성공이나 자아 성취 같은 것을 추구할 때 모든 신앙은 무너지게 돼있습니다.

다윗의 시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다윗이 추구하는 방향과 같이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바른 신앙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 기도생활을 수십 년 해도 추구하는 바가 다르면 하나님을 못 만납니다. 성공과 안정을 추구하면 결국 마귀를 만납니다. 왜냐하면 그 추구하는 방향의 출발점이 미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가 찾는 그것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똥을 좋아하면 파리가 옵니다. ‘나는 똥은 좋아하고 파리는 싫어해’라고 할지라도 똥 때문에 파리는 계속 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추구해야 하는데 다윗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6장에서도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는가를 봄으로써 우리도 동일하게 모든 내용이 하나님과 만나는 방법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옵시며’ 지금 다윗이 하나님께 책망을 듣고 있습니다. 보통 책망을 하는 사람은 화를 내면서 때리기도 하는데, 다윗은 하나님께 분노로 때리지 말아달라고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마음입니다. ‘징계를 하시되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짖어주세요’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붙드는 기도입니다.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불신자를 심판하실 때 진노로 하시는데 결코 사랑으로 진노하시지 않습니다. 지옥이나 심판은 진노 가운데 하지만 하나님 자녀인 다윗은 지금 자신에게 사랑으로 징계해 달라고 기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라면 다 징계를 받게 돼있습니다. 죄를 짓는데 형통하다면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죄에 대해서 징계하십니다. 아기가 똥을 싼다고 벌주는 부모가 없듯이, 하나님은 허용되는 죄에 대해선 용납하시지, 허용되지 않는 죄에 대해선 혼을 내십니다. 그것이 징계이며 사랑으로 징계하십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징계로 몸의 연약함이 왔습니다. 지금 몸이 아프고 연약해졌는데 징계로 인한 것입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은혜는 자격이 없지만 거저 주는 것입니다. ‘내가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 내게 주세요‘라고 간구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징계를 받아서 몸이 약해졌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다윗은 뼈가 떨리는 지경까지 몸이 약해졌습니다. 삭신이 쑤신다는 말처럼 전신이 너무 아프고 통증이 심한 상황입니다.

3절입니다.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다윗은 지금 영혼도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육이 너무 아프면 영혼도 고통스러운데, 육의 고통이 심할 때 영이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다윗은 영혼이 위급할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다윗이 질병에 대해 토로합니다.

약 23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한 평정도 밖에 안 되는 고시원에서 13시간을 아파서 누워있었습니다. 몸이 너무 아프고 열이 펄펄 나서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여름으로 기억되는데 담요와 이불을 덮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계속 기도만 나왔습니다. 그때 몸이 땅으로 꺼지는 듯하면서, ‘아! 죽는구나!’하는 느낌이 몰려왔습니다. 아마 지금 다윗과 같은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럽고 영혼이 고통스러운 단계였습니다. 고통스러우니까 기도만 나오는데 한 3-4시간 정도 방언 기도로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때 그 상황이 어쩌면 지금 이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다음에 제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하나님이 떠나신 것입니다. 대부분 질병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다윗은 질병에 걸린 후 영혼의 눈이 뜨여서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보였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여기에서 주의 사랑은 ‘은혜’입니다. 주의 은혜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5절입니다.

‘사망 중에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다윗은 지금 병이 심해져서 죽을 정도의 고통에 있습니다. 

저도 그때 죽을 정도여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7시간 정도 기도하는 중 몸의 통증이 극에 달하고, 온몸과 요가 땀으로 젖었습니다. 그때 죽음을 얘기하면서 ‘하나님! 저 이제 죽습니다.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스올은 무덤이 아니고 구약 때 죽은 사람들이 가는 장
소입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죽으면 낙원에 갑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이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신 곳입니다. 스올은 ‘연옥’인데, 구약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간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스올에 있던 구약의 백성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후 ‘무덤에 있는 자들이 올라가면‘이라는 말이 여기서 기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속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속죄란 우리가 죄를 지어서 의롭게 될 수 없었는데, 예수님의 속죄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옥에 있던 구약의 백성들이 낙원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속죄 이전의 사람이기 때문에 스올을 경험합니다. 신약 때의 작은 자가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약에 속한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스올을 거치지 않고 낙원으로 직행합니다. 스올은 십자가 승리 후 낙원으로 들려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은 없는 장소입니다.

스올에서는 지금과 같은 깊은 영적 교감이 없기 때문에 다윗은 지금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 제가 지금 죽어서 스올에 가면 끝이 아닙니까, 거기서 어떻게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살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다윗이 지금 장시간 기도하면서 지친 상태입니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밤마다는 오번역이고 ‘밤새도록’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울었는지 그 눈물이 침대에 꽉 찰 정도로 밤새 눈물을 많이 흘렸던 것입니다.

‘내 요를 적시나이다’
다윗의 요가 눈물로 적셔진 것입니다. 눈물이 왜 날까요?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징계 가운데 병이 나면 그때 내 영혼에서 죄를 사함받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눈물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입니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신앙이 끝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죄를 짓기 때문에 그 죄를 사함받을 때 눈물이 동반됩니다. 어쩌면 다윗은 오랫동안 쌓인 죄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아 질병이 오는데, 몸이 고통스러워 밤새 기도하다가 침상을 흠뻑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데 이 눈물은 귀한 눈물입니다. 질병이 오면 우리는 눈물로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이 홍수처럼 쌓일 때 내 죄가 사함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특별히 회개 기도를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질병 가운데 눈물로 기도하면 죄가 사함받습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막혀버립니다.

사람들이 지옥 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죄를 짓는데 죄를 사함받지 않고 마음이 무뎌져서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결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징계를 통해 죄를 사함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죄가 쌓이면 문둥병에 걸려서 죄에 둔탁해집니다. 영적으로 문둥병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천국이 중요합니까, 병이 중요합니까?

미혹은 뭐냐하면, 하나님처럼 하는데 하나님의 본마음이 투영되지 않는 것이 미혹입니다. 진짜는 하나님의 원래 이유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왜 이런 고통이 왔느냐? 눈물로 죄를 사함받기 위함인데 침상을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7절입니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웠나이다’ 다윗이 지금 대적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계시나 은사를 통해 원수를 보는데, 다윗은 놀랍게도 기도 가운데 원수를 봅니다.

저도 그때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과 계시없이 귀신이 질병을 일으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눈물이 엄청 나온 후 막판에 거의 12시간쯤 지난 후에 갑자기 내 입술에서 “나를 괴롭히는 귀신아, 내가 너를 안다. 나가라”라고 하는 축사가 나왔습니다. 영은 눈에 안 보이지만 내 속에 어떤 악한 영이 감지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오래도록 성결의 기도를 한 다음에 근심으로 눈이 쇠했는데 영적인 눈이 뜨여진 것입니다. 영의 눈이 뜨여지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우리 육의 눈이 쇠약해지면서 영의 눈이 뜨여집니다. 영의 눈이 뜨이면 다른 사람과 자신에 있는 악한 영이 감지됩니다. 저도 그때 처음으로 영을 보는 눈이 뜨여졌고 내 안에 있는 악한 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8절입니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지금 다윗이 죄를 지었지만, 사실은 다윗 안에 있는 귀신이 죄를 일으켰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들어온 악한 영이 아니라 내면세계의 영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시편 3, 4, 5장은 밖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과 싸우지만, 6장은 내면세계에서 내게 시험과 죄를 주고, 생각의 죄를 일으키는 존재를 보는 것입니다.

드디어 다윗은 악을 주는 존재에게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정말 놀라운 기도입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내 안에 있는 악한 영이 감지되고 그 영을 향해 외칠 수 있는데, 이것이 다윗의 세계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원수를 지칭할 때 사람을 지칭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에는 악한 영을 지칭합니다. 다윗은 선한 사람이었지만 인간이니까 악해질 때가 있는데 그때 그렇게 만드는 악한 영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기도를 오래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영을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를 오래 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데 장시간 길게 하니까 내 속에서 음란과 혈기와 여러 죄악을 일으키는 존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악한 영도 보이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축사의 은혜를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축사는 그냥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축사는 내 안에 있는 악한 영과 내가 싸워서 이것이 드러나고 내게서 추방될 때 그때 비로소 축사의 에너지가 동반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축사의 원리는 ‘귀신아! 나가라!’가 아니라, 죄가 사함받는 것이 성결 조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우리가 집을 나가면 늘 손발에 먼지가 붙고 더러워져서 손발을 매일 씻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가 매일 쌓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함받아야 하는데, 그 사함받는 셩결 위에 축사가 있는 것입니다. 귀신은 ‘나가라!’ 한다고 나가는 존재가 아니고, 우리가 반드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귀신은 집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방이 많이 존재하는데, 방 하나가 새카맣다면 그 안에 귀신이 있습니다. 귀신은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절대로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사함받고 검은 것을 닦아내면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귀신이 힘들어합니다. 우리 안의 성령님의 빛이 다가오는 것을 귀신이 못 견뎌할 때 ‘나에게서 떠나라’라고 축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사할 때는 성령의 감동으로 해야지, 그냥 하면 귀신이 안 나갑니다. 오히려 우리를 비웃습니다. 우리가 죄를 사함 받고 깨끗한 마음 가운데 축사를 하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재밌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간구를 들으셨다’ 과거형입니다.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미래형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죄를 사함받고 어둠이 떠난 것을 감사하지만, 앞으로도 동일하게 기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연약해서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미래형으로 또 기도를 쏘아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 병들었어도 다음에 또 병이 들 수 있습니다. 그때 또 눈물로 기도하고 축사를 통해서 병이 낫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마치 새 차를 사서 폐기할 때까지 계속 수리해가며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 몸도 병들고 낫기를 반복하면서 건강을 유지합니다.

우리의 질병은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일반적인 병과 뇌에서 야기되는 우울함과 같은 정신적인 병입니다. 우울함은 뇌의 신경조직이 병든 것입니다. 우울함, 분노, 침울, 슬픔, 정신적인 고통 이런 것은 병입니다. 우리는 몸이 아픈 것만 병으로 생각하는데 정서적인 모든 어둠도 질병입니다.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렸을 때 그 전에 먼저 정서적인 장애가 옵니다. 정서적인 어둠, 슬픔은 신호탄이기 때문에 그때 빨리 고쳐야 합니다. 모든 정서적인 어둠은 죄가 쌓인 결과입니다. 죄가 쌓이면 우울함이 옵니다. 그래서 슬픔의 상태는 죄가 쌓였다는 경고입니다. 이때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육체의 병이 옵니다. 육체의 병을 회복하려면 더 장시간의 힘든 기도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마음이 허전하고 슬프고 우울한 단계에서 빨리 회개에 돌입하면 정서가 회복되고 기쁨이 충만해져서 항상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어두운 상태를 그대로 두면 육체에 병이 오거나 재난이 올 수 있습니다. 마음이 우울할 때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다윗은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미래형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지금 악한 영들이 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윗이 떨었고 그 영혼이 떨었는데 지금은 악한 영이 떱니다. 질병이 나갈 때는 어둠의 영이 떠는 겁니다. 나는 떨 필요가 없고 내 영혼의 수척함도 없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갑자기 다윗의 몸이 좋아진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몸이 나았다고 말하지 않고 원수가 물러갔다고 영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귀신은 잘 나가지 않고 힘이 약해질 뿐입니다. 다윗도 귀신이 나간 게 아니라 힘이 약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원수 귀신이 나가거나 힘이 약해지면 몸이 상쾌해지고 컨디션이 좋아집니다. 다윗은 질병의 어둠이 떠나자 영혼의 평안함과 육신의 안식을 다시 누리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질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질병은 100% 징계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은 원수 귀신이 일으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장시간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원수 귀신의 세력이 약해져서 드디어 나가면서 다시 건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계속 반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반복 가운데 우리는 항상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kck43334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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