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시편 강해 2장 [자녀의 왕권]


 
시편 2장 

[자녀의 왕권]

1.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12절까지)

1절입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원어에는 ‘이방 나라들이’가 아니라 ‘이방인’으로 ‘이방 나라들이’는 오번역니다. ‘이방인’은 ‘악인’을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교회를 다녀도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이 열 받은 것입니다.

‘민족들이’ 이것도 ‘오번역’입니다. 원래 원어에는 ‘사람들’입니다. ‘이방 사람들을’ 말합니다.

‘헛된 일을 꾸미는가’ 도전하고 방해하고 계략을 꾸미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세상에 군왕들이 나서며’ 군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왕’입니다. 우리가 말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말이 있지요. ‘왕’이라고 하면 되는데 ‘군왕’이라 하면 멋져 보입니다. 입니다. 세상 왕입니다.

‘관원들이 서로 꾀하며’ 여기에서 관원들은 공무원이 아니고 ‘통치자들’입니다. ‘꾀하며’ 이것도 약간 번역에 문제가 있는데 ‘서로 회의하며’입니다.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이제까지는 여호와 하나님만 나왔는데 드디어 또 다른 말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기름을 누가 부어 줄까요?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이 부어진 사람,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말씀대로 예수님에게 ‘성령이 한량없이 부음 바 되었으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예수님께는 성령이 계속 부어졌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동시에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누가 지금 회의를 꾸미는 것입니까?' 이방인들과 그들의 왕입니다. 이방의 왕은 ‘마귀’를 상징합니다.

3절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멘 것을 끊고’ 그들의 멘 것, 여기에서 ‘우리가’는 마귀, 이방인들입니다. 지금 대적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표현이 되지 않았지만, 영어에는 ‘saying(말하기를)’입니다.

‘맨 것’은 ‘밴드’입니다. 우리가 ‘밴드’를 조직하지요. 이 밴드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묶여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난 우리와 하나님’은 ‘밴드’가 형성된 것입니다. ‘남녀가 결혼’이라는 ‘밴드’로 묶여 집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 ‘밴드’로 묶여 집니다. 묶여서 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단체’, ‘모임’을 상징합니다. ‘멘 것을 끊고’ 지금 마귀가 무엇을 하느냐 하면, 천국 가는 신앙인에 대해서 배가 아픕니다. 그래서 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마치 욥이 잘되니까 욥을 끊으려고 하는 것처럼, 마귀는 지금 끊고 싶어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묶인 예수그리스도’의 관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고자 함이니라’
결박은 ‘오번역’입니다. 원래는 ‘코드’입니다. 코드는 ‘묶는 실제 내용’입니다. 묶는데 끈으로 묶어야 합니다. 어떤 끈으로? 바로 두 개의 끈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가 올라가고 애통이 올라가고 간구가 올라갑니다. 순종이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끈이 있습니다. 또 뭡니까? 내려오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감동이 내려옵니다. 계시가 오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옵니다. 그래서 마귀는 ‘결박을 벗어 버리자’ 이 끈을 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나님이 웃으시는 것입니다, 마귀에 ‘모략’, ‘꾀’의 공격에 비웃으시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 때에 분을 발하사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하나님께서 드디어 화를 내십니다. 이방인들이 분노하였죠. 그런데 하나님도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이 자식들!’ 하면서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나의 왕은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시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왕’입니다. 자녀는 ‘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분은 ‘왕 같은 제사장’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제사장이고 동시에 ‘우리는 왕이기 때문에 왕권’이 있습니다.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응답받는 파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다스립니다. 우리가 정죄하면 정죄 받고 우리가 용서하면 용서받는 것입니다. 왕권이 있습니다.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온은 마운트(언덕)입니다. 현재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진 곳이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지어진 그 장소, 그것이 바로 ‘시온’입니다. 시온에다가 짓습니다. 이 자리는 바로 예수님께서 죽으신 ‘갈보리 언덕’이었고, 아브라함이 제사 드렸던 ‘모리아 산’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가장 중심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장 중심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앞에 ‘내가’는 ‘기도자’를 말합니다. ‘명령’이라는 말은 사실 오번역이고 ‘칙령’입니다. 예를 들어 에스더에 나오는 왕이 공포할 때처럼 특별한 ‘조서’,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지금 계시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간구도 하지만 기도가 깊이 들어가면 ‘계시’가 임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볼 수 없는 내용들, 내가 깨달을 수 없는 내용들,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위에서 오는 것이 계시입니다. 평소에 몰랐던 내용들을 하나님께서 내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기도자는 어느 정도의 깊이에 들어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깊이에 있는 것입니다. 시편은 기도로서 받는 ‘하나님의 음성들’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여기서 말하는 ‘나’는 기도자가 아닙니다. ‘내게’ 서두에 말한 ‘기름 부음 받은 자’ 또는 ‘예수님’이거나 ‘우리’를 상징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하나님께서 ‘천국 가는 사람’을 ‘아들’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아버지’가 나오지요. 원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구약에서는 ‘이사야서’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드디어 계시 가운데 ‘아들’이란 표현을 깨닫는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과연 이것이 ‘그리스도’일까요? 우리가 서두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그리스도’로 생각하였지만, 저는 이 구절을 통해서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우리’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오늘” 낳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미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라고도 부를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낳았다’ 현재 진행형도 아니고 그냥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선포할 때가 옵니다. ‘넌 드디어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할 때가 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란 사실입니다. 구원은 내 ‘개인 경험’이나 ‘개인 주관’이 아닙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나님께서 선포할 날이 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구원받을 때가 오는데 이것은 자기의 감각, 성령세례, 은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너를 낳았다’는 일방적인 선포입니다. 이것은 출산이 아닌 자녀로서, 유산 상속자로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8절입니다.

‘내게 구하라’ 드디어 아버지가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너! 무엇이든지 구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 낳았어! 너 내게 뭐든지 구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구하라 찾으라 두드려라’ ‘네가 내게 무엇이든 구하면 내가 네게 주리라!’ 이 ‘구하라’ 이것은 자녀가 되었을 때, 주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자녀들은 천국에 갈 뿐만 아니라, 간구하면 응답받는 복입니다. 과연 무응답이 있을까요? 무응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어떤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중에 이루어질 뿐이지 절대 하나님은 그 기도를 버린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응답은 없습니다. 드디어 아들에게는 응답의 세계가 열리는데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명령’을 떠나서 ‘칙령’입니다. 급수가 ‘조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무엇이냐? ‘구하면 받는 복’입니다. ‘구하는 모두가 받으며 찾는 모두가 찾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 사항입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은 네 유업으로 주리니’ 이방 나라가 원래 원어로 ‘이방’입니다. 유업은 ‘유산’입니다. 네가 이제 내게 구하면 너를 괴롭히는 네게 도전적인 그 어둠의 세력들을 네게 준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승리에 대한 표현입니다. 어둠이 공격해 옵니다. 그때 내게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공격 들어올 때, 그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공격자들이 결국 내 노획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의 공격이 크면 클수록 내가 얻는 것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축복 받을 수 있습니까? 축복은 어떻게 오느냐? 마귀의 공격 양이 1천이면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로 맞서면 내가 1천을 누리는 것입니다. 공격이 10이면 10밖에 못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귀의 공격을 이해할 때, 그 공격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내가 얻을 포획물입니다.

‘이방 나라들을 네게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원래 원어에는 ‘땅의 대부분’입니다. 땅의 대부분은 ‘이방인이 몽땅 공격해 온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땅의 대부분이 공격해 오니까 ‘땅의 끝까지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공격받은 만큼, 이긴 만큼 내가 누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세계, 건강의 세계, 행복의 세계, 영적인 세계 등 모든 세계를 내가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철장으로’ 철장은 그냥 ‘쇠막대기입니다. 철로 된 장이 아니라, 그냥 ‘쇠막대기’입니다. 과거에 목동들 이 양들 인도할 때, 막대기로 곰이나 사자나 이리나 늑대들을 물리쳤습니다. 맨몸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막대기로서 싸웠습니다. 이것도 같은 것인데 ‘쇠막대기’는 지금의 ‘철 막대기’입니다. ‘나무 막대기’로도 적들을 이기는데, 하물며 ‘철 막대기’로 뭐를 못 이기겠습니까? 그러니까 자녀는 ‘철 막대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철 막대기로 때려 부수는 것입니다.

‘그들을 깨뜨리며’
그들은‘ 공격하는 공격자들’입니다. 이방인들을 내가 깨뜨리는 것입니다.

‘질그릇 같이 부수리로다’
질그릇은 그냥 ‘토기그릇’입니다. 이 당시에는 청동 그릇도 있었지만 그건 왕들이 사용하고, 다 ‘질그릇’입니다. 백자, 청자, 다 질그릇입니다. 이 철 막대기는 원수를 때려잡고, ‘질그릇’같이 깨뜨리는 것입니다. 질그릇같이 깨뜨리는 것은 산산조각을 내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의 세계에 들어왔느냐? 너희가 내 아들이다! 자! 이제 앞으로 너에게 무엇이 있느냐? 너를 공격하는 원수들이 있어 넌 이제 기도로 무엇을 하느냐? 원수들을 다 깨부수는 것이 기도야!’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어둠을 격파하는 철장’입니다. 이런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여기 군왕들도 오번역이고 ‘왕들’입니다. 그런데 서두에서 왕들은 ‘땅의 왕들아’ ‘이방의 왕들아’ ‘세상의 왕들’인데, 여기 왕은 그 왕이 아닙니다. 여기 왕들은 바로, ‘기름 부음 받은 왕’ ‘우리’를 말합니다. 왜? ‘왕들아’입니까? 부족 시대에서는 연맹합니다. 왕권 시대에 왕과 왕들은 싸우는 것입니다. ‘왕’이란 것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면, 전투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왕’이라는 것은, 어둠과의 전투가 있다는 얘기이고, 동시에 우리에게 왕 같은 권세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너희는 지혜를 얻을 것이야!’ 이런 말입니다. 어떤 지혜? 하나님의 지혜, 이 말씀이 ‘지혜’입니다.

‘세상에 재판관들아’ 또 우리는 세상을 재판하는 재판관들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면 주님과 함께 우리는 세상을 판단합니다. 정죄합니다. 하나님 자녀는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재판관이 되는 것입니다. 통치 개념에서는 ‘왕’이고 심판에 대한 개념에서는 ‘재판관’입니다.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를 통해서 적들과 싸우고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서 ‘말씀을 배우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는 동시에 항상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며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경외함으로는 ‘두려움으로’ 우리는 윗사람들을 대할 때 두려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경외함으로 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즐거움이 옵니다. 예배드렸는데 시험이 왔다?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면 무조건 즐거움이 오는데 어떤 즐거움이냐 하면, 세속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영적인 즐거움입니다. 두려워하지만 절제된 즐거움이 우리 마음에 온다는 얘기입니다.

12절입니다.

‘그의 아들에게’ 원어에는 ‘그의’가 없고 그냥 ‘아들’입니다. 아들은 ‘기름 부음 받은 자’ 또는 ‘왕’, 이 아들은 바로 ‘예수님’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이기도 합니다.

‘입맞추라’ 아들에 대해서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원어는 ‘진노가 불붙는다’는 표현이고, ‘급하다’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진노가 불이 붙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 받는다고 하지요. 공사장에서 큰 바위를 터트릴 때, ‘다이나마이트’ 심지에 불을 붙여서 터트리는데, 서서히 타오르다가 나중에 끝 지점에 가서는 꽝하고 터집니다. 그것과 같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분노가 발하는데 폭탄이 터지기 직전입니다. ‘길에서 망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키스하지 않는 사람’,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너희가 내 아들 ‘예수님’에게 키스하지 않느냐? 너희가 내 아들인 ‘내 백성에게 키스하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지금 분노하는 마음이 있어! 지금 폭탄이 터지기 직전이야! 나 지금 화가 나 있어!’ 이 말입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뭡니까? 여기서 ‘여호와’는 원래 없는 내용입니다. 그냥 ‘Him’입니다. 3인칭 대명사입니다. 번역자가 ‘오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자가 여호와가 아닐까? 하고 의역한 것입니다. 여호와가 아닌 ‘아들’입니다. 우리에게 입 맞추어야 할 이방인들이 우리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피하는’ 여기에서 피한다는 것은 도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를 말합니다. 신뢰하면 뭡니까? 복이 온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방인들이 복을 받느냐? 이방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키스하고 받아주고 우리를 의지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방인이 천국 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지만, 이방인들이 예수님이나 우리에 대해서 믿고 신뢰하고 입 맞출 때 그들도 이 복이 전파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길에서 망하는데, 분노가 불붙었어! 그렇지만 ‘아들’을 ‘믿고 의지하고 입 맞추는 사람들은 복을 받을 수 있어!’ 하고 이방인들이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3장부터는 본격적인 기도가 나옵니다. 마치겠습니다! (kck433342@ga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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