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욥기 강해 35장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의 분노의 표현입니다]


욥기 35장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의 분노의 표현입니다]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16절까지)

1절입니다.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엘리후가 고난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굉장한 진리가 계속 나옵니다.

2절입니다.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는 말이냐’ 오번역입니다. ‘당신은 옳게 여기느냐 당신의 의가 하나님의 어떤 생각을 충족시킨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입니다.

3절입니다.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욥은 뜻대로 살고 말씀대로 살았어도 너무 큰 고난이 왔는데 범죄 하지 않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으며, 만약 나의 죄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게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말에 대해 엘리후가 이제 답을 줍니다.

4절입니다.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엘리후는 욥과 그의 친구들에게 의와 고난에 대하여 설명해 줍니다.

5절입니다.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이 구절의 하늘은 복수인데, 이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이 구름은 영계의 구름입니다.

6절입니다.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오번역입니다. ‘당신이 범죄 한다면, 하나님께 대항하여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인데, 죄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만약 당신이 계명을 어기는 것이 많아진다면, 당신은 그에게 무엇을 행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오번역이며 ‘그대가 의롭다면’입니다. 의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행동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게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뜻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며, 죄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들입니다.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손은 행위를 말하는데 우리가 의를 행하면 하나님이 받는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여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인간의 악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하면 안 되고, 또 우리 인간의 악함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기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의로움은 사람들에게 이득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를 행해야 하는 이유는, 의를 행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줍니다.

욥이 고난으로 불평하니까 ‘너의 의로움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가치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엘리후의 답변이 정답입니다.

9절입니다.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오번역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악재 때문에 사람들이 학대받는 사람들로부터 부르짖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이 올 때 부르짖습니다. 학대는 고난의 일종인데, 고난은 우리를 부르짖게 하며 기도합니다. 고통 때문에 나온 것이 종교인데, 모든 종교는 뿌리가 고통에 있습니다. 고통 때문에 어떤 대상 즉, 신을 정하여 부르짖는 것입니다.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군주는 오번역입니다. ‘(mighty)힘 있는 사람’에게 팔로 인하여 부르짖는 것입니다.

팔은 힘입니다. 직장에서는 상사, 아내에게는 남편, 학교에는 선생님, 더 큰 권세자의 팔 때문에 고통당해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고난은 아니더라도 일시적인 고난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기도하는데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해결해 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어떤 누구도 그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엘리후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고통만 해결하려 합니다. 진짜 크리스천은 문제 앞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11절입니다.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우리가 짐승과 새처럼 우둔하다는 것입니다. 땅의 짐승보다 더 지혜롭게 우리를 만들었는데 인간은 어리석어서 본능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함과 거짓과 핍박이 있지만,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12절입니다.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기도를 하고 설사 하나님을 찾을지라도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는다는 엘리후의 말입니다. 왜 대답하지 않으실까요? 악한 사람의 교만 때문입니다. 그들은 악해서 하나님을 못 만납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은 악인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악인들은 악하니까 하나님께서 만나주지 않습니다. 악인도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귀신을 만나고 무당이 되기도 합니다. 악하면 악령이 붙는데 악령은 마귀의 졸개입니다.

13절입니다.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하나님은 ‘(vanity)헛됨’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질이나 쓸모없는 것들로 기도하기에 받지 않으십니다. 불신자들의 기도, 악한 자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는 관심이 없으신데 그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오번역이며 ‘비록 네가 그분을 볼 수 없고’입니다. 굉장히 겸손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선한 사람이고 의로운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은 악해서 ‘하나님 만나주세요!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진짜 만나게 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어요. 들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게 됩니다.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욥은 의롭게 살고 고난을 겪고 하나님만이 판단을 옳게 여기고 온전히 신뢰한다고 말할지라도 그러나 이제 그렇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이 우연이 아니라 의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분노가 있는 것입니다. 욥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며 고난 앞에 겸허하게 낮춰서 눈물로 나아갔지만,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준 것은 욥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답변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 때문에 고난이 오는데, 뜻대로 다 살아도 여전히 인간은 하나님의 정점에 도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고난은 죄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오는 근거가 됩니다.

왜 사람들은 35장을 반대로 해석할까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과 실제 하나님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욥이 정말로 의롭다고 믿었을지라도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경험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옳게 행하여도 분노하셨는데 결국 우리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공의와 완전한 사랑이십니다, 그 공의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우리는 낄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저 사람 선인이야, 죄인이야, 악인이야, 의인이야’라고 분리하면서 표현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는 분노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말이지만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공의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분노하셔서 고난을 주시는데 3년의 긴 고난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욥처럼 흉내 낼 수 없는 의인일지라도 고난을 주십니다. 구원받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분노, 공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깊으셔서 헤아릴 수 없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도 너무 크십니다.

15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선지자들은 고난을 더 받는데, 욥은 선지자로 봅니다. 공의는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인데 특히 선지자에게 더 많이 요구하십니다.

16절입니다.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욥이 고난의 이유를 깨닫지 못해서 지식 없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욥이 하는 말들이 거짓말이거나 비진리는 아닐지라도, 엘리후가 볼 때는 정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같이 위대한 사람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오늘 내용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분노 가운데 데려가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저도 늦게 깨닫고 너무 충격받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봐주지 않습니다. 우리를 고난으로 때려서 교정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하십니다.

믿는 자들이 되는 일이 안 되고 고난당할 때, 욥처럼 ‘내가 왜 이래야 되는가’에 답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은 오늘날 크리스천의 고난이며 우리의 고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이 기도 및 찬양이라 한다면, 욥기는 더 근본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에 훨씬 중요함으로 시가서 중에 욥기를 앞에 둔 것입니다. 시가서는 하나님을 만난 자들의 고백과 경험이며 욥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때, 내 수준으로 보면 안 됩니다. 내가 볼 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하나님 보실 때 분노하실 수 있습니다. 마치겠습니다! (kck43334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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