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욥기 강해 25장 [의롭다하심을 얻어 천국에 들어갑니다]


욥기 25장

[의롭다하심을 얻어 천국에 들어갑니다]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6절까지)


1절입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세 친구가 있습니다. 첫 번째 엘리바스는 데만 사람이며 에서가 낳은 엘리바스의 아들이 데만입니다. 두 번째 빌닷은 수아 사람이며 이스마엘 계통입니다. 세 번째 소발은 나아마 사람인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아마란 이름이 암몬 계통 이름입니다. 오늘은 빌닷의 마지막 말입니다.

2절입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하나님은 ‘dominion(통치영역)’과 'fear(두려움, 공경심)'이 그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하나님은 높은 자리에 계시는데 낙원 천국과 지상 자연계와 지옥(음부)를 모두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특히 낙원에 많이 임재하십니다. 낙원 천국은 평안이 넘치고 환희가 넘치는데 하나님이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낙원 천국의 또 다른 말은 셋째 하늘입니다. 낙원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우리가 앞으로 갈 고향입니다.

3절입니다.
‘그의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군대는 천사입니다. 낙원 천국, 온 우주에 천사가 몇 명일까요? 성경에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나옵니다. 천천은 백만이며, 만만은 1억입니다. 천사 한 명의 위력은 185,000명을 죽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 ‘지금 내 아버지께 탄원하여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군단이 6,000명인데 12를 곱하면 72,000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1억 이상의 셀 수 없는 많은 천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비추는 광명을 받지 않은 자가 누구냐’ 우리가 천국을 가면 하나님의 빛이 비췹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빛이 되시며, 예수님도 빛 되시는데 온 세상을 비추십니다. 온 천사들과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도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빛을 비추시고 기쁨이 충만한 곳입니다.

4절입니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어떻게 의롭다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누가 의롭다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를 의롭다고 여겼는데 친구들이 이 말에 열 받은 것입니다. 빌닷은 욥에게 ‘인간은 죄인인데 하나님과 견주는 것이냐’고 말합니다. 빌닷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인간은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자신을 의롭다고 말했습니다. 욥 자신은 구원받은 사람이며 스스로를 의롭다 이해했고 반면에 친구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의롭다함은 완벽함이 아니며 천국으로 받아들인다고 인정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노아는 당대 의인이었다고 나오는데, 노아도 술 먹고 방탕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널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오겠다는 것이 의롭다의 개념인데, 즉 구원 개념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수준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 수준이 하나님이 받아주실 정도가 됐다는 것, 그게 의로움입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갈 정도로 내가 의로워졌는가, 아닌가의 부분인데, 이 의로움은 실제 의로움이며 계명과 명령, 말씀, 복종심에 대한 의로움입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스스로 의롭지 않다고 여기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갈 수 없고 의롭지 않다고 여깁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 갈 정도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인정할 때 예수님의 피를 적용시켜서 내가 완벽하다고 선언해주시며 천국으로 인도하시는데 이것을 ‘칭의(속죄)’라고 부릅니다.

내가 천국 갈 정도로 의로워서 하나님이 받을 단계가 되면, 그때 예수님의 의를 적용시켜 대속(대신),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를 사해주셔서 천국으로 받아주시는데 이것이 속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 갈 정도로 인정하시면, 인정받은 자에게서 구원을 적용시켜주십니다. 이게 로마서 8장입니다. 구원은 내가 널 천국으로 데려간다는 선포인데, 이 구원은 굉장히 가변적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나를 좋게 보는 상태인데, 그 상태가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죄가 자라나서 악해지면 구원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구원은 죽을 때가 중요한데, 죽을 때 하나님의 맘에 들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 있는 것입니다. 항상 매일같이 구원받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정된 자는 하나님이 그가 천국갈 수 있도록 좋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절대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롭다고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들 정도로 변화된 자에 한해서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그래서 천국에 합당한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영적인 세계에서 여자는 죄에 유약한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죄에 유약한 자가 어떻게 깨끗해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사함 받아 깨끗해집니다. 그 정도가 합격점이 있는데 옷을 입을 정도까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거지가 와서 옷을 하나 줘서 입었는데 냄새가 납니다. 이것은 불합격되는 것입니다. 냄새를 못 맡을 정도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실 때 깨끗함의 선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고 죄 사함을 많이 받아야 되는데 합격선까지 가야 합니다. 천국가려면 반드시 말씀 순종과 죄 사함은 꼭 필수가 됩니다.

5절입니다.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받는 과정은 달과 빛도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구원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점도, 흠도, 티도 없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숙자 사역, 교도소 사역, 창녀촌 사역은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마음에서부터의 많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은 죄를 짓지 않고 다 지켰습니다. 간음하지 않았고, 살인과 도둑질 하지 않았는데, 그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지 않아 지옥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요구사항이 있는데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지옥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읽을수록 구원받기가 어렵습니다. 신앙이 약해지면 위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믿음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3번 부인했습니다. 만약에 믿음이 다 떨어지면 구원 상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도 구원 상실 직전까지 갔으며 간신히 구원을 유지한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도 선지자인데 예수님을 의심했었습니다. 신앙을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 어려운 것입니다.

6절입니다.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오번역이며 ‘하물며 벌레인 사람은 오죽하랴’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 벌레 같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구덩이 같고 벌레 같은 모든 죄악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빌닷의 말은 진리인데 반쪽 진리인 것입니다. 다음 말씀에 나옵니다. ‘벌레인 사람의 아들은 어떠하겠느냐’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the’가 없으면, 그냥 사람의 아들인데 ‘the son of man(인자)’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에 대한 표현이고 구원받은 자입니다. 벌레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의로운 자가 없는데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을 통해서 의롭게 여겨주시고, 벌레 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를 사람의 아들(인자)라고 명명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 인자라고 부르며 동시에 그를 따르는 모든 구원받은 자들 또한 사람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에스겔서에 인자가 나오는데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릅니다. 그때 인자는 예수님인 동시에 구원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빌닷의 말처럼 우리는 천국 못 갈 죄인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셔서 천국으로 인도할 구원받은 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광명 같은 빛이 있고, 우리도 빛이 있는데 우리는 별에 비유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셨을 때 별들을 바라보는데, 별은 구원받은 사람(영적인 후손)을 의미하고, 바다의 모래는 육적인 후손을 말합니다. 우리는 별의 영광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벌레 같지만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진짜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상속받을 자녀가 되는데 우리도 예수님처럼 똑같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통과하며 예수님의 길을 똑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셋째 하늘 낙원천국과 새 예루살렘이라는 놀라운 광채 가운데 영원히 살면서 하나님처럼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벌레 같은 인생을 택하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셔서 인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셔서 천국에 왕 노릇 시켜주십니다. 인생이 완전 역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고생으로 어렵게 살지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 노릇하며 살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이 복 앞에 자기 자녀의 자랑이나 출세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관점이 달라져야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목숨 걸면 안 됩니다. 영원토록 왕 노릇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목표를 위해 달려가면 놀랍게도 부수적인 복이 따라옵니다. 평안이 주어지고, 육체의 건강이 주어지고, 삶의 형통함이 따라옵니다. 즉 이 땅의 복은 보너스입니다. 마치겠습니다!  (kck43334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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