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욥기 강해 14장 [연옥, 천국, 음부, 불의 연못]

욥기 14장


[연옥, 천국, 음부, 불의 연못]



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22절까지)


1절입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오번역입니다. 여자에게서 난 사람은 시간이 며칠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인생이 70이라면 날짜로 볼 때 7일에 해당 되는 것을 말합니다.

’걱정이 가득하며’ full of trouble(고통이 꽉 찬 상태) 즉, 인생 자체가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삶이 유복할지라도 인생 자체는 고통인 것입니다.

2절입니다.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오번역입니다. 인생이 꽃과 같이 내밀어서 꺾이나니, 그림자 같이 도망치며 계속되지 않는다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즉, 인생은 꽃처럼 짧고 꺾여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짧은 인생을 하나님은 눈여겨보시는 것입니다.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 짧은 인생을 살고 죽을 때, 하나님께서 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죽을 때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즉, 심판은 깨끗함과 더러움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날은 ‘연수’입니다. 우리 인생을 달로 비유하는데, 우리의 수명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의 달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달은 우리가 며칠 살고 죽어서 심판받게 되는데, 죽은 다음 예수님의 초림까지를 말합니다. 구약 때는 죽으면 음부나 연옥에 들어갔지만, 초림 이후에는 연옥에 있던 영혼들이 낙원에 들어갑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하나님이 정하신바 대로 이루어지며 우리 인생 역시 대부분 정해져 있습니다.

6절입니다.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인생’을 말하며, 인생을 돌아봐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오번역입니다. 인생을 하나님 앞에 ‘hireling(고용자)’처럼 정해진 것을 이룰 때까지 그분이 우리를 쉴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7절입니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나무는 잘라져도 힘이 있어 또 자랍니다.

8절입니다.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절입니다.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물기운에 다시 나무가 자라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죽으면 인생은 다시 이어집니다. 즉, 낙원과 지옥으로 나눠져서 여전히 소생합니다.

10절입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장정은 오번역이며 사람이 죽는다면, 소멸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지금의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14장은 굉장히 깊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 짧은 인생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며, 앞으로 있을 엄청난 고난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물이 바다에서 줄어들고 강물이 잦아서 마름 같이’ 마치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12절입니다.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하늘은 ‘heavens(하늘들)’복수입니다. ‘사람이 누우면 일어나지 못하는데 하늘들이 더 이상 없을 때까지 그들은 깨어있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지금은 연옥이 없지만, 구약 때는 연옥이 있었습니다. 연옥에 있으면 깨어있지 못하고 잠을 잡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에 대해서 “깨어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상태가 깨어있는 것입니다. 영이 잠을 자면 계시가 없습니다. 영은 내가 육신의 잠을 자도 깨어있습니다. 그래서 꿈을 통해서 계시가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초림 때, 연옥에 있던 구약의 영혼들이 낙원에 올려지는데 근거는 십자가의 공로, 즉 속죄입니다. 예수님께서 강도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고 강도는 이틀 뒤에 죽어서 바로 낙원에 갔습니다.

신약 백성이 좋은 이유는, 죽는 즉시 천국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마귀를 밟았기 때문에 신약 백성이 훨씬 좋은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마귀는 반역하는 존재인데, 마귀를 이긴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셔서 우리를 그냥은 구하지 못하며, 대신 속죄의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물 되어서 속죄됐으니까 영적으로는 마귀가 밟힌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마음대로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원래 당신 자신이 법이기에 자신이 정해놓은 법을 따라 행동하시는데, 그것이 공의입니다. 자신의 법에 의해 드디어 속죄로 십자가에서 마귀를 밟으시고 우리를 낙원에 올리신 것입니다. 지금은 더 이상 연옥은 없고 낙원 천국만 있습니다.

13절입니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스올은 오번역이며 구약에는 ‘grave(무덤)’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원래 지옥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스올은 연옥과 음부가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번역할 때 어떤 경우는 음부로, 어떤 경우는 연옥으로 해야 되는데, 여기는 연옥입니다.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구약 때는 모든 사람이 연옥이나 음부에 떨어지는데 이게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입니다. 단지 믿는 자에게는 진노가 덜한 것뿐입니다. 드디어 십자가 사건으로 진노가 풀렸는데,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진노를 다 퍼부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그 공로로 우리가 진노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나를 숨기시고’ 연옥은 과거에 쉬는 장소이고, 숨긴 장소이며, 안식의 장소였습니다.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연옥에서 해방되는 날을 정하신 것입니다.

‘나를 기억하옵소서’ 인간은 죄의 문제가 있어 십자가 사건 이후에 낙원에 올라가는데 그때 하나님께 기억되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오번역이며 ‘사람이 죽으면 살까’입니다. ‘살까’는 뭘까요? 사람이 죽은 후 연옥에서 잠을 자다가 낙원으로 올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고난은 오번역이며 나의 지정된 때의 모든 날들인데, 음부에 들어가거나 연옥에 들어가는 때에 그 기간들입니다. 나의 변화가 올 때까지 초림 때 부활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옥에 있다가 낙원 갈 때 변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욥은 자신의 변화가 올 때까지 앞으로 들어갈 연옥에서 정해진 기간을 기다릴 것이라 말합니다. 지금 욥은 이 땅에서의 고난만이 아니라, 사후의 내용까지도 다 이해된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낙원에 들어가면 주님이 우리를 부릅니다. 주님과 동거하기 때문에 완전한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오번역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앞으로 당신 손으로 만드실 어떤 작품에 갈망을 가지실 것이라’는 욥의 놀라운 말입니다. 이것은 처소 즉, 낙원 천국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욥이 있을 때는 낙원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나로 영계를 만드셨는데, 우주가 한 날에 창조됐습니다. 이것은 이미 과학이 증명했습니다. 빅뱅의 원리가 처음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반대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주는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을 깨달았는데 이것이 빅뱅이론입니다. 우주는 한 번에 만들어져서 커진다는 우주 팽창론인데 정확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마디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나니”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때 만드신 것이며, 곧바로 연옥에서 끌어올린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낙원을 만드실 것을 예측하였고, 자신도 때가 되면 그곳에 갈 것을 알았는데 우리와는 수준이 다른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16절입니다.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즉 ‘내가 죽고 연옥에 있다가 부활하는 단계들을 세시오니’입니다.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정죄하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죄가 있는데 왜 감찰하지 않으시냐고 묻습니다. 즉 낙원 천국은 속죄가 이루어져야 가는 곳인데 예수님의 속죄 은혜에 놀란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속죄의 자리인 아름다운 낙원으로 인도해 주시며 자기의 죄를 보지 않는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내 위법을 꽉 닫아버리고 내 죄악을 싸매신 것인데, 십자가의 공로로 싸매신 것입니다. 욥은 아직 십자가를 보지 못했지만 그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도 십자가를 보지 못했는데 깨닫습니다. 구약에 있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 것을 믿은 게 아니라, 예수님의 효험과 효능을 믿은 것입니다.

18절입니다.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오번역이며 ‘무너지는 산은 아무것도 없게 되고 큰 바위는 옮겨지고’입니다.

19절입니다.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오번역이며 ‘당신은 돌을 닳게 하고 주변에 있는 흙과 먼지, 자라는 것들을 씻어버리나이다’입니다. 이날은 재림 때 오는데, 우주와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새 자연계가 옵니다. 욥은 이것을 연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비유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오번역이며 ‘당신은 사람의 소망을 destroy(멸망) 시키다’ 입니다.

구약에서는 죽으면 연옥이나 음부에 가고, 연옥에 있던 자들은 낙원에 가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새 하늘, 새 예루살렘 또는 불의 연못으로 가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연옥에서 낙원 가는 story였다면, 이제부터는 음부의 내려가는 story입니다. 드디어 심판인데 사람들의 소망을 멸하시는데,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역시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죽음 이후에는 더한 고통이 옵니다.

20절입니다.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오번역이며 하나님이 against him(그 사람을 반대)하시는데 그 사람은 지옥 가는 사람이며,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는 게 아니고 죽음으로 pass(통과)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욥은 이 땅에 살면서 지금은 고난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연옥에 있다가 낙원에 올라가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보니까 상이 없어진 것처럼 하나님이 반대해서 영원히 그를 압도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저주입니다. 그 사람은 잘 먹고 살지만, 하나님은 그를 영원히 이기시는데 아마 욥은 깜짝 놀랐을 것이고, 차라리 현재의 자신이 더 낫다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어’ 연옥에 있다가 낙원에 가면 얼굴빛이 변화되듯, 믿지 않는 사람도 지옥 가면 영적으로 엄청 달라집니다. 어떻게 변화될지 나오지 않았지만, 영적인 모습이 구더기나 뱀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쫓아 보내시는데 드디어 하나님과 음부는 차단되고, 불의 연못은 마귀가 거하는 곳으로 완전히 분리되는데 7배나 더한 고통이 임합니다.

21절입니다.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설사 이 땅에서 잘 살아도 지옥 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살면서 아들 잘되라고 보약 먹이고 뒷바라지했는데 나 자신이 음부에 떨어지니 이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다음 말씀이 더욱 놀랍습니다.

22절입니다.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중요합니다. 음부는 몸이 없고 영이 느끼는 고통입니다. 재림 때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을 입습니다. 불신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흉측한 몸을 입게 돼있습니다. 현재 음부는 영이 고통을 느끼는데, 불의 연못은 몸도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육체가 통증을 가질 것인데, ‘불로서 소금 치듯 하리라’고 했습니다. 불로 영혼과 몸이 지져집니다. 화형이 음부와 불의 연못을 연상할 수 있는 그나마 근접한 고통입니다. 몸에다가 계속 불을 대는 것입니다. 고통지수에서 화형이 100이면, 끓는 물에 들어가는 것은 70밖에 되지 않습니다. 화형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잔 다르크와 몇 사람이 화형을 당했는데 그들의 고통은 짧지만, 불의 연못은 고통이 영원합니다.

욥이 이것을 왜 봤을까요? ‘너 고통스러워? 저들을 봐! 인생에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욥에게 고난에 대해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그 영혼은 정서적인 고통,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애곡하는 고통이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고난에 대해서 너무 많은 고통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시각에서는 며칠밖에 되지 않습니다. 잠깐만 지나면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는데, 새 예루살렘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자연계가 나타납니다. 지구와 바다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 앞에서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천국보다도 훨씬 큰 영광이 영원히 기다립니다. 그러니 이것을 우리가 무엇으로 살 수 있으며, 바꿀 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순교 당했을까요? 우리의 영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전파를 통해서 오는 고통, 믿음 때문에 오는 고통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고 구원받은 사람인데도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더 깊은 은혜를 깨닫기 위해 고난을 주셨는데, 욥이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분의 은혜를 몰랐을 것입니다. 이런 세계를 누가 알겠습니까? 이 말씀은 너무 놀라운 표현들입니다.

욥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아는데 어느 정도로 깨닫느냐면, 낙원이 이루어질 것을 미리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신앙인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의연하고 담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시고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도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kck43334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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