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욥기 강해 9장 [의로움이 완벽함이 아니기에 고난은 필연입니다]


욥기 9장

[의로움이 완벽함이 아니기에 고난은 필연입니다]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35절까지)


1절입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절입니다.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욥이 빌닷의 말에 대해 수긍하고 있으며, 자신의 고난 이유가 주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오번역이며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처럼 완벽할 수 있느냐’입니다. 번역할 때 ‘의롭다’하는 단어는 보통 righteous, perfect를 쓰는데, 여기서는 ‘just’를 쓰고 있습니다. ‘just’는 의롭다보다 한 수 위인데 ‘완벽하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 정도면 됐다는 수준의 의로움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심판받지 않고 정죄되지 아니하는 정도의 의가 아니라, 완벽한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의는 십계명과 산상수훈을 지킬 정도의 의를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처럼 완벽한 의는 소유할 수 없습니다.

3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오번역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옳다고 주장한다는 할지라도 하나님의 완벽함 앞에서는 천 마디 중 한마디도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수준에서 볼 때 완벽한 것이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4절입니다.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 오번역이며 ‘자신이 그분에 대항하여 마음을 굳게 해서 번성하겠느냐’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1,000이라는 분량의 요구사항에 대해서 마음을 막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어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남들이 볼 때 의롭다는 것이지, 내가 아무리 변화되고 의로워진다 할지라도 아주 작은 일부의 변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끊임없는 죄성이 올라오고 생각 가운데 하나님께 대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닫으면, 당연히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산을 제거하고 분노 가운데 산을 엎어버려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1,000중에 10정도 의에 수준을 지키고 있다면, ‘just’는 하나님의 완벽한 상태 1,000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준수할 정도의 의를 가지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10개를 가지고 의롭다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변화되어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6절입니다.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지구에는 판들이 있는데 땅 밑에 큰 판이 있습니다. 이 판이 흔들려서 지진이 나고 지형의 변형이 일어납니다.

7절입니다.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하나님은 지구의 자전을 멈추게 하실 수 있습니다.

8절입니다.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여기서 하늘은 은하계를 말하며 은하계가 커지고 넓어집니다. 바다 물결은 우주가 펴져 나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9절입니다.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우주에는 눈에 띄기 쉬운 북두성, 삼성, 묘성이 있고, 남방의 밀실 즉 보이지 않는 별도 행성도 블랙홀도 아닌 어마어마한 질량이 우주에 있음을 말합니다.

10절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이것은 킹제임스 오번역으로 문법이 맞지 않습니다. 지나서야 발견되는 놀라운 일들 즉, 지금은 알 수 없고 나중에 알게 되는 놀라운 일들을 말합니다. 욥 자신이 아무리 많이 깨달았다 할지라도 우주도 모르고 아는 것이 너무 없다고 말합니다.

11절입니다.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놀랍지 않습니까? 그분이 내 앞에 가시는데 나는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오번역이며 ‘pass on 스쳐 지나가다’ 입니다. 욥은 의롭게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너무 크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 앞에 너무 작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12절입니다.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지 우리가 물어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오번역이며 ‘하나님이 자기의 분노를 돌이키지 않아서 교만한 자를 돕는 자들이 그분 앞에 엉거주춤 상체를 굽힌다 할지라도’입니다.

14절입니다.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너무 크신 하나님 앞에 내가 드릴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욥은 의로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질문 앞에 대답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 간구해서 응답이 내게 왔다 할지라도 내가 간구했기 때문에 내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은 아니라, 하나님은 내 탄원과 상관없이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17절입니다.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하나님이 나를 폭풍으로 치시고, 집이 태풍으로 무너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온몸에 상처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얼마나 고난으로 힘들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듭니다. 욥은 굉장한 육체적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고통 또한 너무 심한 것입니다.

19절입니다.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오번역이며 ‘심판을 한다면 변호할 시간을 내게 주실까’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탄원할 시간이 없을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20절입니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내가 무엇을 구상해서 변명하고 탄원한다 해도 결국 나를 정죄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21절입니다.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온전하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스스로 삐뚤어지고 왜곡된 것임을 증명할 따름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나는 항상 틀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가 스스로 온전하다 여기지만 실상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내가 설사 옳고 바르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내 생명과 사고와 생각들을 부정할 것이라 말합니다.

22절입니다.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욥은 하나님이 악한 자나 의인이나 똑같이 멸망시키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정말일까요? 맞습니다. 선지자들은 의로운데 핍박과 고통 가운데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반면에, 악인은 그들의 죄 때문에 멸망 받고 지옥 갑니다. 선지자라고 해서 더 나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니며 다 순교 가운데 죽어갔습니다. 우리가 의로우면 더 큰 번성을 주시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악인들에게 형통함을 주신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 앞에 징계받을 때 내가 악해서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하거나 의롭거나 똑같이 고통을 주십니다.

23절입니다.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인간의 무죄한 것도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24절입니다.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하나님이 재판관의 얼굴을 가려서 선인들이 진 것입니다. 때로는 악인이 의인을 이기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권선징악이라는 하나님의 카테고리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오번역입니다. 나의 인생이 우편배달원보다 더 빠르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절입니다.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28절입니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나는 실제 무죄한데 하나님이 나를 무죄하다고 선언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9절입니다.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내가 하나님 앞에 정죄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변론과 내용이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30절입니다.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오번역입니다. 내가 눈물로 몸을 씻는다 할지라도 내 손은 그렇게 깨끗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욥이 볼 때는 자신의 몸을 씻었는데 손이 더럽다는 것입니다. 의에 기준이 하나님 앞에 미달됐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31절입니다.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오번역이며 ‘당신은 나를 ditch(하수구)에 적시게 하시며입니다.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하나님 앞에 내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게 살아왔는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몸을 씻어도 깨끗게 안 되고, 하나님이 나를 하수구에 빠뜨리게 하셔서 옷이 더러워지고 이것이 나를 혐오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32절입니다.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욥이 하나님 앞에서 변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하나님과 나 사이에 손을 잡을 중재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34절입니다.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변론의 여지가 없고 스스로 의롭지 않다고 여기며 사악한 자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길이 없다고 드디어 청원합니다. 이 고난으로부터만 벗어나기 원하여 막대기를 치워달라는 것입니다.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두려움이 없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35절입니다.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하나님의 징계 앞에 할 말이 없고 때리면 맞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내가 징계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회복되길 원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에 대한 탄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왜 이런 많은 시련을 주셨을까요? 이유는 하나님을 우리가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으며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고난과 역경, 문제들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오지만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욥처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단지, 조금 이해할 따름이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 인생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얻어도 아무것도 아니고, 누려도 아무것도 아니며, 고난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건짐 받는 대상일 뿐이지, 우리는 무엇을 주장하거나 토로하거나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순간에 그냥 은혜 가운데 감사하고 살 뿐입니다. 우리가 깨닫는 것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극히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를 가르칠 때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단지 윤곽만 드러낼 뿐, 불가능하며 정확히 못합니다. 우리는 욥처럼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크심을 깨닫고,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낮아지면서 하나님을 조금 배울 뿐입니다. 마치겠습니다!   (kck43334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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