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욥기 강해 6장 [고난 당하는 자를 동정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욥기 6장


[고난 당하는 자를 동정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30절까지)

1절입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절입니다.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당신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욥의 대답이며, 욥은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을 저울에 달아 보고 싶다 말합니다.

3절입니다.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내가 당하는 고통과 재앙은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외적인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마음에 화살을 쐈기 때문에 마음에 고통이 더 크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고통은 환경으로 끝나지 않고 마음도 같이 아픕니다. 욥은 하나님이 나에게 고난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쏘신 내 안에 화살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독은 고통에 따른 마음의 상처나 아픔과 절망감 이런 것들입니다. 영적인 아픔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욥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죄로 인한 것이면 회개하면 되는데 사실 욥은 회개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하나님에 대한 나쁜 두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들이 내 안에서 다 정렬됩니다. 외적으로도 고통이 큰데 하나님에 대한 내 마음마저도 닫히는 것입니다. 욥은 신실한 사람이므로 마음에 더 큰 고통이 온 것입니다.

5절입니다.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내가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막 괴로워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환경의 어려움이 올 때, 마음이 아프고 신음을 하게 됩니다. 들나귀처럼 나도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신음하고 아파하는 것입니다.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욥이 고통으로 소가 울듯이 운다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자신의 고난을 토로하지만 그 고난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오번역이며 ‘나도 내 영혼이 고통과 접촉하는 것이 싫어’입니다. 하지만 접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마음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싫지만, 싫어하는 음식을 먹듯이 고통을 어쩔 수 없이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정확한 표현은 ‘나는 내 요구사항을 가지면 좋겠어!’라는 말입니다.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내가 갈망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나를 멸하시기를 바란다는 것인데, ‘멸하다’의 단어 속에는 죽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욥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하나님이 차라리 자신을 죽여주기를 원한다는 뜻밖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나를 죽여 달라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나는 살아 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되고, 슬픔이 덜할 수 있고, 슬픔에 둔감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오번역이며 ‘let him not spare’ 즉, 아낌없이 행하시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때로 하나님 말씀을 거역했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말씀을 거역한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너무 심하니 나를 죽음으로 위로하셔서 고통을 줄여주시고 그것을 지금 아낌없이 행해 달라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즉 ‘내가 무슨 기력으로 소망해야겠느냐’입니다.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원어는 ‘나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겠느냐’입니다. 욥의 소망은 생명이 연장되는 것인데, 내 힘을 보니 연장될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몸에 기운이 너무 없는 상태라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2절입니다.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몸이 놋쇠처럼 단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욥은 질병의 고통 가운데 있을 뿐만 아니라, 몸의 기운이 쇠한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서 기력이 좋아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쇠할 것 같으니 차라리 나를 빨리 데려가 달라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도움은 '힘'을 말하며,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눌리면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지 못합니다. 욥은 도움을 간구할 힘도 없고 고통이 너무 심하니까 차라리 죽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오번역이며 '지혜가 나로부터 완전히 방출되었다’입니다. 지금 욥은 도움을 간구할 힘도 없고, 영적인 감동을 받을 지혜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많이 다운된 상태이고 성령의 감동을 받을 힘이 없습니다. 사람이 정말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욥과 같은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실제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실직만 해도 고통스럽고, 이혼만 해도 고통스럽고, 자녀가 1명만 죽어도 고통스러워합니다.
욥의 고난처럼 자녀가 모두 죽고, 모든 재산이 날아가고, 집에 기왓장까지 무너진 상태이고, 몸도 장기가 파괴되어서 완전히 파멸 상태가 되면, 간구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 앞에 꼼짝 못 합니다.

14절입니다.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오번역이며 고통받는 자에 대한 동정이 친구에게서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처지에 있는 나를 친구들이 동정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도움을 간구할 힘도 지혜도 없는 자신에게 친구의 동정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정하지 않는 자는 전능자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버린 자라고 말합니다. 물론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너의 고난이 너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말속에 동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 아파하는 자를 도와주는 것이 우선인데 바른말로 공격만 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도움 되기보다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네가 아픈 것은 죄 때문이라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보다 우선 그 사람을 동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오번역입니다. 내 형제들은 개울처럼 속임으로 대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마 욥의 형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욥을 돌보지 않았던 것으로 봅니다.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형제들이 날 도와주지 않고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동정심을 발휘할 형제들과 친구들과 주민들의 속 내부가 검다는 것을 말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하얗고 사랑이 많은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그들이 시간이 지나서 동정심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번역하면 동정심이 없는 그들의 길은 굽어지고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형제와 친구들이 멸망당할 것이라 말합니다. 저주스러운 말이지만 이것이 진리입니다.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이 방관하면 방관한 사람에게 해가 옵니다. 그렇다고 매일 도와주지 못하는 한계는 있지만 방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어야 할 자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그에게도 하나님의 징계가 오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데마는 이스마엘 아들 중 한 명이고, 떼들은 군인과 병력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스마엘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욥을 봅니다. 그리고 스바의 행인들도 욥을 봅니다.

20절입니다.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욥의 이웃이 욥을 보고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도울 마음도 도울 방법도 없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이 아무 소망이 없고 그냥 혼란스럽고 오히려 창피한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형제들, 이웃, 친구들도 나의 몰락을 보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욥은 어떤 것도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욥의 세 친구가 욥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멸망당하는 모습을 보고 방관하는 형제나 이웃처럼 내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너의 죄에 대한 징계’라고 훈계만 합니다.

24절입니다.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지금 엘리바스가 설교하니까 욥이 ‘그럼 나를 가르쳐서 이해시켜 보라. 그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죄에서 돌아서라고 훈계하는데 실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오번역이며 ‘너의 옳은 말이 얼마나 힘이 있겠느냐’입니다.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즉 ‘너희들의 주장은 무엇을 책망하는 것이냐’입니다. 옳은 말은 굉장히 강력하지만 너희들이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책망하는 것인지 도리어 묻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오번역입니다. 너희들이 남의 말을 듣고 책망하지만 결국 잔인한 자의 말은 바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27절입니다.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너희는 고아를 압제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무 힘든 가운데 있는 고아를 압제하고, 고통을 가중시키는 자들이라 말합니다.

28절입니다.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네가 나를 공격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좀 봐달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진리라고 말한 것은 그것으로 끝내고 나를 좀 보라는 것입니다. 욥의 초췌한 모습을 보라는 것으로 내가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이 너희에게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잘못으로 당하는 고통이 아니며, 나를 훈계하고 압제하기보다는 동정해 주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29절입니다.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이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동정심이 없는 것은 너희가 죄악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빨리 죄악에서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30절입니다.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즉 ‘내 미각이 굽어져서 구분을 못하겠느냐’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의 영적 감각은 아직 살아 있고 자신의 반론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 가운데 있는 자를 동정하지 않는 것도 죄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욥의 지적이며, 욥은 자신이 죄가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겠습니다!      (kck43334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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