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욥기 강해 3장 [인간은 출생부터 고난이다]


욥기 3장

[인간은 출생부터 고난이다]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6절까지)

1절입니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1장에서는 재산이 날아가고, 자녀가 죽고, 2장에서는 아내가 욥을 저주하며 하나님을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세 친구들이 와서 7일 동안 먹지 않고 함께 고통 가운데 바라보고 있을 때, 드디어 3장에서 욥이 말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재산이 날아갈 때 빨리 회개하면 되는데 버티다가 질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가장 강한 징계가 죽음입니다. 죽음은 어떤 죽음이라도 다 징계이며 장수하다 죽어도 징계인 것입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이며, 하나님의 공의 앞에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장수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이라는 징계가 오기 전에 가벼운 징계가 올 때 회개하는 것입니다. 욥은 최고의 징계인 죽음을 당하지 않고 회개를 통해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징계 앞에 누가 더 빨리 돌아서느냐가 중요합니다. 징계 받기 전에 세운 자를 통한 말씀이 있게 되는데 그 말씀을 따르면 징계를 안 당합니다. 맞기 전에 돌아서면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점점 강해집니다. 모든 징계는 심판의 방법이며,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분노가, 믿는 자에게는 긍휼을 통한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생일은 임신된 날을 말합니다. 번역자가 출생을 해산으로 이해했는데 해산된 날이 아니라 임신된 날입니다.

2절입니다.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정확한 표현은 ‘spake’는 말하다(speak)의 과거형인데, 욥이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대상에게 말하는 뜻입니다.

3절입니다.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난 날(was born)입니다. ‘났다’라는 개념이 중요한 부분인데 해산이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나다’라는 말을 이해할 때 해산을 말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의미 있는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사내아이가 임신 되었다는 그날 밤입니다.

4절입니다.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늘이 어두운 것이 아니고 빛이 오는 것을 임신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것은 임신이 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정자가 들어갔는데 캄캄해서 임신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생명과 반대로 죽음의 세력입니다.

욥이 이해할 때 처음 시작된 때, 즉 수정된 그때부터 빛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둠이 있었으면 임신이 안 되었을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빛이 임해야 생명이 잉태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생명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5절입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어둠과 죽음의 그늘은 잉태를 못하게 만드는 것인데 불임은 어둠이고, 임신과 출산은 빛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어둠이 임하면 멸망하게 되고 고통스럽고 임신이 안 됩니다. 구름 역시 어둠을 주는 요소입니다. 어둠이 강해지면 생명이 잉태가 안 되며 실패, 파산, 질병 등이 어둠으로부터 옵니다. 반면에 성공, 건강, 행복, 번성은 빛으로 봅니다.

6절입니다.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해의 날 수는 양력이고 달의 수는 음력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예 임신이 안됐으면 언제 수정되고 착상되었는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solitary, 즉 아빠, 엄마가 따로 있었으면 원천 봉쇄가 되었을 텐데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날 서로 사랑해서 하늘에 빛이 임해서 나를 낳았는데 이런 일이 안 일어났더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저녁부터 밤까지 지배하여 자신을 잉태되지 않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욥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즐거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안 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자, 즉 어둠을 말하는 것이고 이 어둠이 우세해야 되는데 빛이 임해서 나를 낳은 것에 대한 근본적 후회감입니다.

9절입니다.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새벽 별들이 아닌 ‘석양의 별들’이 맞는 번역입니다. 지금 저녁 해질 때 불임의 어두움들 즉, 잉태되지 않는 어둠이 장악했다는 것입니다.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광명은 오번역이며 ‘빛’입니다. 저녁때부터 밤새 어둠이 지배해서 잉태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욥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지금의 아픔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안 태어났더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놀라운 말이 나오는데 '내 어머니의 자궁의 문'입니다. 내 어머니의 자궁의 문이 닫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슬픔의 출발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욥의 고통의 시작은 정자가 난자에 들어갈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원초적인 개념인데, 욥이 의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이것을 알까요? 그래서 성경은 성령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가 몸은 온전치 않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입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번역하면, ‘왜 내가 자궁에서 안 죽었는가’입니다.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중요한 부분인데 ‘give up the ghost’입니다. 원래 영은 ‘spirit’으로 쓰는데, 세속적인 영의 대한 표현은 ‘ghost’입니다. 욥은 어머니 배에서 나올 때, '영이 왜 나가지 않았는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머니의 무릎입니다. 쉽게 말하면, 욥은 나올 때까지는 좋았는데 어머니가 무릎에 나를 앉히셨기 때문에 나의 죽음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욥은 젖을 빨아야 할 가슴이 내 죽음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어머니가 그 순간에 나에게 젖을 왜 먹였느냐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이제 낙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출산 전이나 출산 직후 사망의 경우 영은 어떻게 될까요? 부모가 구원 안에 있으면 아기는 천국에 들어갑니다.

14절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지옥을 뜻하는 말입니다.

자기 부모가 구원 안에 있었으면 천국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인데 조기 사망의 경우, 아직 죄를 거의 안 지었기 때문에 지옥 가운데서도 상층부에 들어갑니다. 같은 지옥이라도 고통이 덜한 장소가 있습니다. 조기 사망의 경우는 견디기가 그나마 쉬운 곳에 갑니다. 물론 뱃속에서 지은 죄가 있지만 죄의 양이 적은 것입니다.

15절입니다.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금과 은은 천국을 말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구원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조기 사망한 아이가 가는 지옥이 있습니다. 만약에 엄마가 낙태를 했다면 그는 살인자이며 지옥입니다. 그래서 낙태는 큰 범죄이며 결국, 엄마가 아이를 지옥에 보내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또는 낙태되어’ 이 번역은 ‘hidden untimely birth’인데, 여기서 욥이 말하는 ‘birth’의 개념은 해산이 아니라 유산을 말하며, 언제 죽는지 모르는 즉, 영이 들어가지 않은 죽음을 말합니다.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영은 불멸인데 생명이 들어가는 시기, 즉 영이 들어가는 시기는 아마 수정 후 2개월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포분열 단계에서는 뇌와 심장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심장이 뛰어야만 저는 생명으로 이해합니다. 수정 후 보통 10주 정도 기관 형성이 완성된 이후에 심장이 뛰는데 그때 영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천국이나 지옥을 가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빛이 임해야만 영이 들어가는데 2개월이 안됐을 때 사망에 대해서는 살인이 아니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17절입니다.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는 음부입니다. 음부에 가면 악한 자가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피곤한 자는 유아 사망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연옥에 갇힌 자가 쉼을 얻는다는 것으로, 구약 때는 연옥이 있었지만 지금은 연옥이 없습니다.

19절입니다.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20절입니다.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고통 가운데 있는 내가 해산을 통해서 빛을 얻은 것 즉, 출산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엄마 뱃속에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나에게 생명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죽고 싶은데 죽음이 안 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는 엄마 뱃속에서도 고통스러웠고 태어난 이후에도 고통 때문에 죽기를 원하는데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생명이 끈질긴 것입니다.

인간은 고통스러우면 죽고 싶고 행복하면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이 있고 그 고통 때문에 죽기를 바라고 우울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무덤은 출산된 다음에 죽음을 무덤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욥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죽음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둘러 싸여는 오번역이며 ‘hedged(울타리)’가 맞습니다. 울타리는 제가 볼 땐 양막이나 요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죽어야 하는데 안 죽고 양막에 쌓인 것입니다. 양막이 터지면 인간은 죽습니다. 그래서 양수가 터지면 빨리 병원 가서 치료받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있어서 양막에 있던 그가 출산되었고 길도 모르는 자신에게 빛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먹기 전에 탄식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나올 때에 울부짖음을 탄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앓는 소리가 아닌 출산될 때부터의 원초적인 고통의 표현인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출생한 사건 그 자체가 두려운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출생을 저주합니다. 이런 원초적인 저주가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욥은 인생 자체를 고통으로 보는 것입니다. 지금 고통도 있지만 원래 고통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나에게 안전도 없고, 힘도 없고, 평안함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항상 그래왔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인생을 저주합니다. 우리는 욥기를 이해할 때 성경에 있으니 당연히 진리라 생각합니다. 욥의 말 자체는 틀린 것이 없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앞에서도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솟구치는 말을 막 할 수 있는데 이것도 죄입니다. 욥이 맞는 말을 한 것이지만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침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욥은 진리를 깨달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 맞는 말이라 할지라도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런 말들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진리는 어떤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 받는 것입니다. 욥은 여기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욥기는 진리이지만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변론은 무익한 것입니다. 신학을 전공하고 책을 많이 봐서 머리에 든 것이 아무리 많아진다 할지라도 이런 것들이 한 사람을 진리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즉, 천국으로 인도 하지 못하면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은 각종 매체를 통해 많은 내용이 올라오고 많은 지식을 습득합니다. 유튜브에 일루미나티가 어쩌고 하는 말들이 물론 맞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천국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떨어지면 맞는 말을 잘하는 것 같지만 천국과 상관이 없는 얘기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떨어지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세상은 진리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맞고 틀리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변화되는 삶, 이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지식은 죽고 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변화되어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 이것이 진리임을 명심하십시오! 마치겠습니다! (kck433342@gmail.com)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욥기 강해 42장 [고난은 복음전파의 능력을 갖게 합니다]

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욥기 강해 41장 [고난은 리원야단과 같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거대한 능력입니다]

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시편 강해 1장 [천국 가는 사람]